오랜만에 음악에 관한 전문적인 글을 쓰다보니 글이 앞뒤가 안 맞고 주제를 벗어나고 좀 횡설수설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감안해 주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 분들에게는 아직까지 낯선 고음악(early music)이라는 분야는 사실상 범위가 광범위하다. 학자들마다 시대를 가르는 기준과 정의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그 당시 존재했던 시대악기(period instruments)를 복원하여 연주하는 고대 때부터 바로크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도와 같은 다른 나라권의 음악들도 때로는 이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모두 유럽에서 파생된 것들로만 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 단상으로 무엇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부터 무겁거나 생소한 주제를 다루면 독자 분들께서 지루해하실 거 같아 지금 이 시간을 빌어서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작곡가들 이야기를 하되 다른 곳, 아니 심지어 음대에서조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일종의 뒷이야기 내지 에피소드를 다루도록 하겠다.
음대까지 갈 거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우는 바로크 음악 하면 우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비발디, 바흐, 그리고 헨델의 이름을 들어왔고 교과서에도 이 세 분의 초상화가 버젓이 그리고 나란히들 걸려있다.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는 음대에서의 서양 음악사 시간에는 하인리히 쉬츠 같은 다른 작곡가들도 다루지만 역시나 이 삼총사의 이야기도 좀 더 비중있고 중요하게 다루고 서로 비교대조하는 시간까지 가지곤 한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초기도 중기도 아닌 바로크 후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다. 바로크 음악의 시작은 1600년이며 이들의 등장 이전에도 수많은 작곡가들 그리고 연주자들이 존재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인 1685년에 태어났다. 비발디는 이들보다 7년 전인 1678년에 태어났다.
그럼 이 쯤에서 이런 의문점이 들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쳤던 이 세 사람은 생전에 단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까?라고. 물론 우리는 이미 정답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지구촌 시대가 아닌 이상 서로 간에 활발한 왕래나 교류를 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차로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비발디 같은 경우는 건강 상의 문제로 장거리 여행이 거의 불가능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흐의 전기를 통하여 헨델과 접촉을 두 번 시도했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독일 내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존재였던 바흐는 자신보다 훨씬 더 국제적으로 유명하고 잘 나가던 동갑내기 헨델을 무척 만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한 번은 바흐의 감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한 번은 헨델이 별로 마음에 없어서 결국 성사될 수 없었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럼 이들에게 있어서 비발디는 어땠을까? 이 또한 바흐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 또한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바흐는 비발디의 협주곡 몇 곡들을 오르간 혹은 독주 하프시코드 용으로 편곡하였다. 이것은 바로 비발디의 작품이 당시 베네치아보다 새롭고 더 획기적인 인쇄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로 활동한 적이 있고 베네치아를 직접 다녀갔다는 공식 기록도 있다. 하지만 비발디를 직접 만났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다.
비발디와 바흐로 다시 돌아와 설명하자면, 이 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요한 게오르크 피젠델이라는 드레스덴 궁정 소속 음악가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뇌피셜일 뿐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명확한 사실로 비발디와 피젠델은 사제(師弟) 지간이었고 피젠델과 바흐는 친구 관계였다. 그래서 바흐는 친구로부터 자신이 존경하던 분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구두로든 서신으로든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피젠델 또한 비발디가 어떻게 생각하던 말든 바흐의 이름을 간접적으로나마 그에게 언급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자면 '독일 어디에 무반주 바이올린 곡을 기가 막히게 잘 쓰는 음악가가 있더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셋이 만약 한 자리에 모였더라면?'이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일단 서로의 강점인 악기들을 내세우고 특별 음악회를 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 이론에 대하여 혹은 작곡 기법에 대하여 충분히 서로를 존중해가며 밤샘 열띤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오래 전 Classic FM에서 재미로 만들었던 바흐의 페이스북(맨 아래 링크 참조)처럼 만약 이들이 오늘날처럼 SNS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세대들이었더라면 정말 하루 한시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을 거 같다. 귀족들로부터 곡 의뢰 받으랴 음악가들끼리 서로 연락하랴 그리고 또 가족과 주변 사람들 챙기랴...
https://www.classicfm.com/composers/bach/guides/bach-facebook-profile/
* 대표이미지 출처: Printerval